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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소식지 | 기쁨터 이야기 2006 년 겨울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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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은배 작성일07-05-12 14:36 조회7,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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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보내는 유서  
              

도시야에게 엄마가 보내는 유서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지금, 그 무시무시한 폭풍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네가 본래의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아무리 호화로운 선물보다 나에게는 도시야 네가 건강하고 싱글벙글 웃어주는 것이 몇 배나 더 가치 있는 선물이란다.
네가 태어나서 함께한 지 13년, 넌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깊고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인생의 중반에 이런 것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정말 인간으로서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만약 네가 그냥 보통 아이로 태어났다면 아마 나는 ‘사랑’이라든다 ‘생명’의 의미조차 모른 채 어리석은 일만 반복하며 살았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마 하느님은 도대체 구원할 길이 없는 나를 안됐다고 생각해 너를 보내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매일 괴로움만 앞섰고 솔직히 말해서 힘들었다. 그래도 점차 그 어려움은 나를 정화하기 위해 생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힘든 일을 이겨나갈 때마다 내 안에 필요 없는 것-시샘, 허영, 질투, 두려움-이  씻어내려 갔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 “거친 폭풍 후의 무지개.” 예부터 “무지개는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계약의 징표”라고들 한다.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얻는 것은 아마도 네가 나에게 전해 주고 싶은 소중한 메시지, 즉 무지개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기 위해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너에게 배운 것을 글로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글을 모두 모아놓으면 상당한 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저 쓰고 싶어서 썼을 텐데, 도중에 어떤 것을 깨달았다. 내가 너의 이야기를 쓴 것은 모두 너에게 보내는 나의 ‘유서’라는 것을. 너는 아직 글자도 읽을 수 없고, 말로 뭔가를 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사실 넌 내가 쓴 글을 읽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이런 생각이 든 것일까?
나에게는 너에게 남겨줄 재산이 없다. 그뿐 아니라 형제마저 남겨 주지 못했다. 너한테서 받기만 했을 뿐...... 정말 한심한 이야기다. 이런 내가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네 덕에 내 영혼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풍부해졌는지, 이런 것들을 정확히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너 같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해나 공감을 얻어 살아가기가 편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쓰게 되었다.
보통은 나이순으로 하늘나라로 가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적어도 너보다 하루만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는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마음은 남는다”고 하지. 나는 육체가 사라져도 마음을 남겨서 널 지켜주려고도 생각했다.
또 하나, 나는 너에게 새삼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널 만날 때까지는 이렇게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수많은 선인들, 철학자들이 구해 마지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네가 가르쳐준 답은 “살기 위해 산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라고 생각되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건 사실 굉장히 간단한 구조인지도 모른다.
너와 사는 동안 모든 것을 ‘생명의 차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너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생생하게 빛나는지 어떤지가 사물을 보는 판단 기준이 되었다.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게 살 수 있게 되어 나는 깊이 감사한다. 5년 전의 나보다, 작년의 나보다, 어제의 나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에게는 유서를 쓰는 것이 너무 이른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번이고 말하겠지만 내일 일은 모르는 거다. 하루하루를 빛나게 살기 위해서도 나의 유서는 매일처럼 갱신되어 가겠지. 여기에 쓴 것도 그 길고 긴 유서의 일부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마 커다란 흐름의 한 신호인기도 할 테니까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없는 그대로 걸어가거라. 그러면 뭔가 어려움에 처할 때도 반드시 너의 동반자가 나타나줄 거야.
도시야, 멋진 인생, 고맙다.


     -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기류 유미코 지음) 중에서 에필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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